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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ACT예술 인문학 강의 제 4강

최종 수정일: 2023년 6월 24일


강사: 김예경



개념미술(1970~1980년대) 관념미술(idea art) 혹은 정보미술(information art)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란 작품의 결과물 보다는 작가의 창조적 발상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 된다고 보는 미술이다. 전통적인 미술관 전시와 미술시장의 매매구조에 저항하고 미술의 본질과 역할에 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당시 젊은 미술가들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또는 ‘미술이 무엇일수 있는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다시 집중하였으며 그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논의는 1966년과 1972년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어 ‘개념미술’이라는 범주로 등장하였다.


l 개념 미술은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 비디오 아트, 어스 아트(earth art), 대지미술(land art)등 몇가지 미술 사조를 총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l 개념미술에서도 미술은 대답보다는 질문에 가까웠고 개념주의자들은 전통적인 매체의 한계를 떠나 먼저 생각부터 하고 어떠한 형태든 간에 사장 적합한 방식으로 그 개념을 제시한다. 언제나 개념을 결과물보다 우선시하였다.

l 솔르윗 : 개념만으로도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 개념은 계속 발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특정한 형태를 찾게 된다. 모든 개념이 물리적으로 구현될 필요도 없다.

1. 개념미술의 등장 배경 : 개념미술이 등장한 배경에는 일찍이 마르셀 뒤샹 그리고 플럭서스와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고려해야한다. 미니멀리즘은 작품에 내재하는 초월적 의미가 아닌 사물성(대상성)자체를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작품의 제작과 경험에 있어서 고도로 개념화된 방식이 이론화 되었다.


2. 개념미술의 네가지 방식 : 레디메이드, 개입, 자료형식, 언어

l 레디메이드 : 현대 미술의 표현기법의 하나를 가리키는 용어.

예술작품화 된 일상용품에 붙여진 용어로, 프랑스의 미술가 마르셀 뒤샹이 처음 만들어낸 미적 개념이다. 그의 첫번째 작품인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1913)는 변기 위에 바퀴를 올려놓은 것인데, 이로써 그는 예술 작품에 대한 과대한 의미부여에 항거했다. 그는 대량생산된 흔해 빠진 물건을 선택함으로써 예술 대상은 독특해야 한다는 관념을 깨려고 했고, 이러한 반미학적 행위로 인해 당대의 주도적인 다다이스트가 되었다. 로버트 라우셴버그,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이 이 표현기법을 받아들였다.




마르셀 뒤샹과 레디메이드 작품들



l 뒤샹의 의도는 미술에서 지적(知的)인 바탕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미술창작과정에 동반되는 신체적 활동과 손재주에 대한 관심을 지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브라크George Braque(1882~1963)나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또는 초현실주의의 작가들이 바닷가의 돌조각이나 짐승의 뼈 등을 주워 오브제로 한 방법과 상통하는 것으로 미(美)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즉 미는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 미술의 새로운 특색이다. 그래서 어디서나 손에 넣을 수 있는 레디메이드를 창의를 가지고 발견하면 창작된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1. 개념미술의 timeline


l 1960년 이브클라인 : 창문밖으로 뛰어날기를 시도함으로서 [허공으로의 도약]이라는 퍼포먼스를 연출함


l 1962년 이브클라인 : S41푸른 비너스를 발표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기억되는 화가 이브클라인은 자신만의 색인 청색의 모노크롬의 화면을 스스로 ‘인터내셔널 블루’라 이름지어 특허까지 내어 그 색은 아무나 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색상 청색 그림물감을 특허(특허번호 ibk191)를 내어 사유화하였다. 그는 그 푸른색을 통해 푸른 하늘과 같은 ‘비물질성을 회화화 하였다.

l 1963년 헨리 플린트 : 개념미술이라는 기사가 실린 [우연성에 관한 선집]을 출간한다.

l 1967년 솔르윗 : [개념미술에 대한 단평 발표] 미니멀리즘과 확연히 구분되는 ‘개념미술이 라는 용어가 생김

l 1970년 최초의 개념미술전시회가 뉴욕 문화센터에서 열린다.

l 1971년 미국의 미술평론가 루시 리파드가 개념미술 사상에 관한 책 [6년]을 출간한다.

l 1973년 길버트와 조지 최초로 [사진조각]을 만든다.




개념미술 대표 작가들


1. 조셉 코수스 (1945~)


미국작가 코쿠스는 뒤샹의 생각(기성품의 작가의 의도에 따라 미술품의 지위를 얻는 것)을 발전시켜 1960년대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개념 미술을 가장 손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작품이 [하나인 세개의 의자]이다. 의자를 찍은 사진, 실제의의자, 사전적 정의의 의자를 나란히 전시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인 지각(실제의자), 상상(사진의이미지), 사유(의자에 대한 정의)를 한 화면에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진과 사물 글씨가 모두 하나의 자라는 개념을 연상시킨다.

하나인 세개의 의자(1965)




2. 솔르윗(1928-2007)


인식과 언어, 반복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현대 미니멀리즘 미술작가이자 개념미술가


미완성된 열린 큐브 시리즈는 르윗의 스케치에서 드러나는 기본 모듈인 직선과 입방체의 구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시각화 된 것이다, 직선의 흰 나무막대는 정육면체의 모든 선분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선분이 자라나 정육면제를 완성하는 시각적 효과를 느끼게 된다. 오히려 미완성된 큐브들은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 관객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도형과 구조물을 재탄생한다.


솔르윗의 벽드로잉들은 1968년 10월 뉴욕의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열린 베트남 종전을 위한 학생 동원 위원회를 위한 단체전에서 이 첫 작푸품이 소개되었고 이후 1200개의 벽 드로잉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벽드로잉은 현재에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솔르윗이 벽 드로잉을 그리는 법을 ‘지시문’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물리적인물질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발생시키는 ‘개념’ 자체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런 작업들이 가능했는데 이 벽드로잉들은 전시기간동안 전시되고 다시 지워지는 일종의 프로젝트이면서 슬르윗의 작품을 채워넣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1. 요제프 보이스(1921-1986)



1960년대는 전위예술의 시대다. 아시아, 유럽, 미국에서 활동한 많은 예술가가 오브제 위주의 전통적 회화와 조각에 반기를 들었다. 시간 기반의 해프닝, 설치미술, 실험적 음악, 액션 중심의 작품을 만들어내며 당시 예술계에 만연한 상업주의를 외면했다. 백남준, 존 케이지(John Cage), 오노 요코(Ono Yoko) 등 다양한 예술가가 등장해 ‘플럭서스(Fluxus)’ 운동을 이끌었다. 플럭서스란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한 용어로, 과정을 중시하는 실험적이고 즉각적인 예술 흐름이다. 미술가, 음악가, 작가 등이 실험적 예술을 선보인 당시 예술계의 중심에는 플럭서스의 핵심 인물이자 개념예술은 물론 전후 예술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예술가 중 한 명인 요제프 보이스가 있다. 요제프 보이스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이론가, 교육가, 정치가였다. 그는 서구 문화를 창조성에 집중할 수 있는 민주적 환경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확장된 예술 개념(expanded concept of art)’을 주장하며 과정 지향적이고 시간에 기반을 둔 액션 중심의 예술을 선보였다. 회화, 조각, 드로잉 등 전통적 예술 기법도 놓치지 않으면서 그래픽아트, 공연, 설치, 퍼포먼스, 강연, 행동주의, 심지어 선거운동에까지 참여하는 등 다면적으로 활동할 뿐 아니라 사회, 정치, 환경, 문화, 심리 같은 광범위한 영역에 관심을 두었다. 요제프 보이스 작품의 뿌리는 그의 삶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크레펠트에서 태어난 그는 공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당시 그가 탄 비행기가 크림반도에 추락하며 부상을 당해 타타르족에게 구조됐고, 수많은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종전 이후 뒤셀도르프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1961년에는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kademie Düsseldorf)의 교수로 임명돼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학생당, 자유국제대학, 녹색당 같은 단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물론 조각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전쟁의 경험을 끌어오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며 작품 활동에도 끊임없이 매진했다. 이 시기에 조각 작품을 정적인 형태가 아니라 능동적 물질과 잠재적 에너지의 결합으로 확장한 ‘The Earth Telephone’(1968)과 그 스스로 ‘생존 키트’라고 부른 ‘Sled’(1969)가 탄생했다. 전시에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그를 구조한 사람들이 펠트와 지방을 이용해 체온을 회복시키고 상처를 치료한 기억을 되살려 펠트, 담요, 지방 덩어리, 손전등을 운반하는 기본적 운송 수단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1965년에는 뒤셀도르프의 갤러리 슈멜라(Galerie Schmela)에서 단독 퍼포먼스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를 선보이며 예술의 치유 가능성을 모색했다. 머리를 꿀과 금잎으로 가리고, 구두를 각각 펠트와 쇠로 꿰매고 약 2시간 동안 죽은 산토끼에게 예술품을 설명하며 미술관을 거닐었다. 뉴욕 웨스트브로드웨이의 르네 블록 갤러리(René Block Gallery)에서는 살아 있는 코요테와 며칠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1974)).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 사회와 자연, 북미 문화의 상징적 조합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며 동물과 특별한 친밀감을 나누는 치유자로서 자신을 내보였다.

호박꿀, 마가린, 고무호스, 전동 펌프로 구성된 ‘Honey Pump at the Work Place’(1974~1977)도 그의 대표작. 관람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로 그의 인생, 에너지, 변화를 상징적 순환 시스템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6월 13일까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뮤지엄(Belvedere Museum)에서 대대적으로 열리는 그의 회고전 [Joseph Beuys - Think. Act. Convey]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전역,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지역에 무려 7000그루의 나무를 심는 대규모 산림녹화 프로젝트 ‘7000 Oaks’(1982)를 선보이는 등 당시 전통적 기준이나 규범을 벗어난 다양한 예술 실험을 펼치며 많은 논쟁을 이끌어냈다.





4. 그 외 개념미술가들

일상적인 물건, 단어, 간단한 소묘, 짧은 영화, 3차원 구조물을 전시하였던 마르셀 브로타에스(1924-1976), 레디메이드 재료와 물건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후대의 개념미술가들을 길러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자칭 살아있는 미술이라는 공동작업을 통해 독특하고 양식화 된 행동과 다채로운 개념으로 명성을 알린 길버트 프뢰슈와 조지 패스모어(길버트와 조지), 물감을 바르는 다양한 방식을 실험했던 이브 클라인, 미술자체보다는 그 본질을 탐구했던 조셉 코수스 등이 있다.

길버트와 조지



5. 개념미술의 딜레마

포스트 모던, 아방가르드로서 개념미술은 반 체체, 반자본을 그 가치로 내세웠고 후기 자본주의 강력한 시장경제 세력과도 맞서는 듯 보였다. 미술과 사회에 개입하는 미술의 행동력은 개념미술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념미술의 ‘행위’들은 시장에서의 소비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제도 및 체계에의 저항적 태도가 그들의 중요한 속성이었다. 그러나 결과 적으로 개념미술은 그것이 인정받고 미술사의 주류에 진입함으로써 반체제성과 반 상품성의 가치를 점차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아방가르드 미술의 딜레마이자 미술의 혁신이 가진 한계이다. 개념미술은 이미 등장했던 다수의 아방가르드와 같이 체제로 진입하면서 권력화 및 상품화된 것이다.

오늘날 미술에서 더 이상 새로운 ism은 없다. 이제 이즘의 시대는 끝났다.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최근의 유효한 이즘이 개념미술과 포스트미니멀이다.

1960년대 이후 미술은 아름다움보다는 앎을 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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