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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ACT 예술 인문학 강좌 제 5강

최종 수정일: 2023년 6월 24일

강사 : 김예경

전위예술~ 아방가르드


l 아방가르드는 전위(前衛), 선두, 선구 등의 뜻으로 프랑스의 군사 용어인 ‘전위(부대의 전초로서 선발된 소수 정예부대)’에서 나온 말.


l 정치적 의미로 오늘날에는 좌익(左翼)과 같은 말로, 특히 예술상으로는 인습적인 권위와 전통에 대한 반항, 혁명적인 예술 정신의 기치를 내걸고 행동하는 예술 운동을 말한다.


l 따라서 특정의 주의나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라기보다는 신시대의 급진적인 예술 정신 전반에 걸쳐서 사용되는 말이다.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1. 전위 미술 :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의 매우 혁신적이며 급진적인 운동 경향으로 즉, 아방가르드(Avant-Garde) 미술이란 이런 척후병처럼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 미래의 미술 경향을 주도하는 역할을 자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l 이탈리아에서는 《미래파》 미술이 등장하여 《미래파 선언》을 발표하였다. 전통적인 조형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새롭지 않으면 예술로 여기지 않았다.


l 스위스에서는 《다다이즘》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예술의 죽음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창조한 미술작품은 기존의 미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도발적인 것이었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l 1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휩쓸자 유럽의 많은 미술가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는데 아방가르드 예술이 뉴욕에서 다양한 미술작품으로 표현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마르쉘 뒤샹(Marcel Duchamp)이 있으며 그는 1913년 미국 아모리쇼(Armory show)에서 발표한《계단을 내려오는 누드2》라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화장실 소변기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 《샘》은 아방가르드 미술작품이 기존 미술에 던지는 충격이 매우 컸으며, 아방가르드 대표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


l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 베를린에서는 새로운 미술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존 하드필드(John Heartfield)는 독일에서 '다다(dada)'예술을 전개하였는데 포토몽타주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독일의 정치적 현실을 조롱하는 미술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작품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미술에 도입한 것으로 기존의 예술개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예술형식을 창조한 것이었다. 1920년 베를린에서 '국제 다다 메세(International dada Messe)'라는 전시회가 열리면서 유럽 전역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작품이 전시되었다.



2. 전위 음악 : 무엇을 오늘날의 전위음악으로 해석할 것이냐에 관해서는 입장에 따라 다르고, 통례적으로는 대체로 좁은 의미에서의 현대 음악과 일치하나 해석에 반드시 일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전위음악은 연주의 경우, 또는 음재생(音再生)의 경우 ‘소리들’에 자발적이며 자유스러운 생동감을 주려는 의도에서 피치 ·리듬 ·형식 등의 요소를 미리 설정하지 않고, 연주자의 순간적인 임의성 또는 선택성에 맡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를테면 음악이 고정된 작품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스스로 생성 ·발전할 터전을 설정하려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l 오늘날 전위음악의 기법적(技法的) 기초는 그 대부분이 1950년대에 일어난 것이다. 이 때 새로운 장르 또는 기법으로 등장한 것은 뮤직 콩크레트, 뮤직 세리엘,등이 있다.


* 뮤직 콘크레트 : 1948년부터 파리 방송국 기사 피에르 셰페르가 시작한 것으로, 철도의 소리나 동물의 소리 등 자연계의 음이나 악기의 음 등을 녹음하여 이를 기계적, 전기적으로 조작하여 변질시키거나 겹치기도 하여 음악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은 음에 의한 쉬르리얼리즘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1952년에 불레즈나 메시앙이 뮤지크 세리엘의 양식과 전자 음악의 양식에 가까운 구성적인 방법으로 뮤지크 콩크레트의 작품을 발표하고, 그 뒤 바레이즈, 슈토크하우젠, 라마티, 크세나키스, 페라리 등도 이 방법으로 작곡한 바 있다. 전자음과 소년의 노랫소리를 소재로 한 슈토크하우젠의 전자음악 <소년의 노래>(1956)가 성공한 이후 이러한 종류의 작품이 많이 나타났다. 뮤지크 콩크레트풍으로 녹음한 음을 오브제적으로 쓰는 방법은 뮤지크 세리엘의 경우와 흡사하다.


* 뮤지크 세리엘 : 음렬주의(音列主義, 프랑스어: Musique sérielle)는 곡을 쓰거나 분석하는 기법의 하나로, 음고·음세기·리듬과 같은 음악적 요소들을 어떤 음렬에 따라 음렬이 반복될 때까지 한 번씩 순서대로 쓰는 음악 기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음렬주의 작곡가로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피에르 불레즈, 장 바라크, 마리오 다비도프스키가 있다.


l 케이지가 제기한 우연성 ·불확정성 음악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소재의 과도한 규정성 때문에 쇠퇴한 뮤직 세리엘을 빼놓고 다른 것은 특히 불확정성과 결부되어 60년대에 들어서 더욱 보급되었다.


존케이지(1912-1992)


4분 33초 등의 우연성 음악을 시도하여 많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플럭서스에서 활동한 전위예술가이자, 아방가르드 음악가이다. 전위예술음악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으며 백남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백남준은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라는 곡(?)을 작곡해 공연(정확히는 퍼포먼스)했는데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면서 내는 소리로 케이지에게 찬사를 보냈으며 1년 뒤에는 존 케이지를 만난 자리에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이란 공연으로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공연을 했다.


l 아놀드 쇤베르크의 제자이며 음악적으로 그를 열렬히 숭배하였다.


l 일본의 선불교, 주역의 영향을 받아 우연성의 음악을 제창하였다. 피아노 줄에 나사못, 고무, 유리, 깃털, 핀 등 온갖 잡동사니를 끼워놓고 희한한 소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12대의 라디오를 동시에 틀어 여러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 강연, 드라마를 마구 섞이도록 하고, 항아리에 물을 쏟아붓거나 휘파람을 불어 곡을 만드는 등...기상천외한 시도로 청중들에게 때로는 신선한, 때로는 파격에 가까운 충격을 안겨주곤 했다. 전자음악(뮤직콩크레트), 음렬주의(뮤지크 세리엘) 등의 영향도 받았다.


l 미국의 현대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초연되었던 날의 모습이다. 그날 피아니스트가 가지고 나온 악보에는 음표가 하나도 없었다. 악보에는 음표 대신 각 악장의 첫 부분의 침묵을 뜻하는 ‘Tacet'과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는 지시, 각 악장의 연주 시간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텅 빈 악보의 침묵과 대비되는 객석의 소음과 여기저기 들려오는 청중들의 목소리가 그날의 연주였다. 비의도적인 상태에서 우연히 들리게 되는 소리 자체가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파격이었다. 이것은 ‘침묵’에 대한 깊은 사고와 연구가 이룩해 낸 존 케이지의 깨달음이었다.




연주자는 침묵을 유지하지만 관객은 무언가를 듣는다. 오늘날에도 많은 음악인이 전 세계 곳곳에서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무대에 올린다. 관객이 공연 동안 어떤 소리를 들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듣게 된다. 마치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인생처럼. 케이지의 '4분 33초'는 우연이 전부일지도 모르는 우리의 삶을 닮은 음악이다.


l 1944년 작품인 ‘A Room’은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미니멀리즘(minimalism) 스타일로 작곡되었다. 피아노에 볼트를 장착하고 연주하게 되는 이 곡은 4, 7, 2, 5; 4, 7, 3, 5라는 복잡한 리듬 체계(마디)에 기초했다. 맥박이 일정하게 흐르는 짧은 구성을 나타내는 것 같은 이 곡은 상당히 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떤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존 케이지의 탐구 정신과 그의 음악을 들으면 ‘숫타니파타’의 구절이 떠오른다. →‘어떤 것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분별심을 내지 말라./ 덧없는 세상에서 생존 상태에 더 이상 머물려고 하지 말라./ 깊이 생각하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은/ ‘내 것’ 이라는 소유개념을 갖지 않는다./ 생과 죽음 근심과 슬픔을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라.


prepared piano


→존 케이지는 피아노 줄에 이물질을 부착해 피아노 음높이를 불안정하게 변화시켰다. 불확실성 자체를 음악의 요소로 받아들인 존 케이지는 전위 음악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l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 1962년 서독 언론이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벌인 페스티벌을 두고 이같이 논평했다. 당시 독일은 전위 예술 성지였다. 독일에 모인 예술가들은 플럭서스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그들은 기성세대 예술을 증오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에너지로 들끓었던 그들은 과격한 방식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했다. 무대 위에서 도끼로 피아노를 산산조각 내는 퍼포먼스는 기본이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활동하던 시기, 케이지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였다. 플럭서스 멤버들은 사실상 케이지의 자식들이었다. 플럭서스 자체가 케이지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는 예술가들의 집합체였다. 플럭서스 주축 멤버였던 인물이 백남준이다. 그는 케이지 공연을 처음 접한 시점부터 자신의 삶이 새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케이지를 숭배했다.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백남준의 실험 정신은 케이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전 세계 예술가들은 케이지의 전복적인 사고를 배우려 했다. 케이지는 현대음악을 넘어 현대예술의 아이콘이 됐다.


→현대 예술의 대부 뒤샹(왼쪽)과 체스를 두는 존 케이지. 존 케이지는 음악계의 뒤샹으로 불릴 만큼 현대 예술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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